16개월 아기와의 삿포로 여행은 거의 극기훈련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중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바로 귀국 날에 만난 JR 열차 중단 사건이었지요.
스스키노 근처 호텔에서 묵었기 때문에 택시 타고 삿포로 역으로 이동 (1,000엔 소요) 한 다음, JR을 타고 공항으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호텔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니, 전화를 좀 해보고는 구글 번역기로 ‘열차가 지연되어 택시가 없다’라고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열차랑 택시랑 무슨 상관이지…?
일본 의사소통 진짜 답답하다…… 설명 좀 해줘라!!! 으앜ㅋㅋㅋㅋ
나갔더니 택시 잘만 잡혔습니다. 근데 이게 징조였던 것이었습니다…
삿포로 역에서 JR 탑승 실패
삿포로 역에 도착해서 JR 티켓 끊는 곳으로 걸어가니 딱 봐도 여행객인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뭔가 불길합니다…
영어 설명 따위 없는 삿포로에서는 빅스비 비전과 파파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번역을 해보니 폭우가 쏟아져서 열차 운행이 지연/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직원에게 물어봐도 언제 재개할지는 자기들도 전혀 모른다고 했고요.
아니… 그냥 구름 좀 끼고 새벽에 비 좀 온 모양인데,
눈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어쩌려고 이정도 비로 열차가 중단되는 거지??
라고 속으로 생각해 봤자 답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부러 공항에 일찍 가서 맛있는 게 많다는 국내선 쪽을 돌아보려던 계획은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삿포로 역에서 한 시간 동안 헤맸죠. 애는 애대로 힘들어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계속 열차 전광판을 보면서 다니다가 한국어 능통 직원을 발견하고 쫓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분이 한 번 올라가 보라길래 부리나케 플랫폼으로 갔는데, 10~15분? 정도 기다려보니 꽝이었습니다.
플랫폼에 줄 서있다가 앞에 있는 한국인 남성분과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우리 부부보다 일본어를 좀 더 잘하심), 플랫폼에 있던 직원이 기차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뭐 어쩌고저쩌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플랫폼에 사람이 많으니 좀 내려보내야겠다 싶어서 안내한 것 같습니다.
삿포로 공항 쪽이 아닌 오타루나 아사히가와 쪽은 그래도 열차가 운행이 되는 것 같았고, 공항 쪽으로 가는 길만 문제가 있는 모양인 듯했습니다. hbc랑 htb 같은 홋카이도 방송사에서 취재도 나왔어요. 하하하
교통수단 변경! 버스냐 택시냐
삿포로 역에 도착하고 벌써 한 시간 반이나 지났습니다. 이제 특단의 결정! 을 해야 했습니다.
1. 공항버스
열차를 못 탄 사람들은 버스를 타러 갔을 것이다. 삿포로역이 공항버스 출발 지점이긴 하나, 기다리는 사람도 많고 아기랑 타기 힘들 것이다. (멀리서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사람 진짜 많았음)
2. 택시
구글 지도를 확인해 보니 소요시간은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1시간 정도 걸리며, 17,000~22,000엔이 나온다고 합니다. 환율 900원 정도로 계산했을 때, 최대 18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앞에 서 계시던 남성분과 함께 택시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그분은 1시 비행기라서 무척 빠듯했고, 저희는 아이가 있으니 불확실한 것보다는 택시가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죠.
택시를 타다
그렇게 티켓을 환불받고(체크카드로 구입했는데 현금으로 바로 줌), 택시 정류장으로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많았으나 택시가 많아서 줄은 빠르게 줄었습니다.
택시 정류장 앞에 직원분이 있어서 일행이 몇 명인지 물어봅니다. 손가락으로 표시하면 인원에 맞게 적당한 크기의 택시가 옵니다. 저희는 총 4명이어서 커다란 레이같이 생긴 SUV 택시를 탔습니다. 캐리어 3개, 유모차에 각종 면세물품을 실을 수 있는 정도였죠.
기사님이 처음에 하이웨이로 갈 건지 물어봅니다. 구글 지도에서 보면 20~30분 정도 차이 나는 것으로 나와서 고속도로로 가자고 했습니다.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 신호가 많아 시간이 좀 걸렸으나, 고속도로는 빨랐습니다. 기사님이 고속도로에서는 130km/h까지도 밟으시더라고요. 택시비는 무섭게 올라갔지만 편하긴 했습니다.
의외로 공항까지 톨비가 쌌어요. 990엔인가? 그렇더라고요. 오타루 갈 때는 편도 1200엔 정도 했거든요.
신치토세 공항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고, 총 금액은 톨비까지 합쳐서 14,070엔이 나왔습니다. 원래 16,000엔 좀 넘게 찍혀 있었는데 기사님이 뭘 누르더니 13,000대로 할인이 되었어요. 일본어를 몰라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12만 7천 원가량을 지불하고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은 비용으로 잘 왔어요. JR 끊기면 근처에서 한국인 찾아서 같이 쉐어해서 택시 타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신치토세공항 인터내셔널 터미널에 내리자 진이 완전 다 빠졌습니다…. 하하하 쇼핑도 못하고 바로 비행기 타러 갔네요.
JR 운행 중단 이유
한국에 오고 나서 홋카이도 뉴스 채널을 찾아보니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한 토사 유출이 원인이었습니다.
비가 엄청 오긴 했나 봅니다. 한겨울도 아니고, 장마철도 아니고, 태풍도 없는데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이야…
JR 터미널에서 한참을 취재하던데 삿포로역 영상은 끝에서 5초 나옵니다. 카메라 앞을 몇 번 지나가서 혹시 출연하지 않았을까 찾아봤는데 안 나왔습니다 😅